2010년, 세계 여자 배드민턴 월드랭킹 5위에 낯선 이름이 올라왔다.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배드민턴에 관심이있던 사람들이라면 그녀가 바로 유럽 배드민턴의 자존심, 티네 라스무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덴마크의 거성, 티네 라스무센은 덴마크 배드민턴 국가대표팀의 물리치료사인 마르틴 바운과 결혼 후 티네 바운으로 거듭났다. 1979년 생으로 현재 33살인 그녀는 배드민턴 선수로서는 다소 나이가 있는 편이지만 지금까지도 건재한 플레이 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배드민턴 선수로서의 티네 바운
티네 바운은 1979년 6월 21일, 덴마크의 회르스홀름(Hørsholm)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7살이었을 때, 오빠가 배드민턴을 치는 것을보고, 궁금증에 배드민턴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 여자아이의 궁금증 하나가 지금 덴마크의 자존심 티네 바운을 있게 한 것이다.
2007년부터 국제대회들을 휩쓸고 2008년부터 현재까지 세계 최상위 랭커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녀의 강점은 무엇일까? 티네 바운의 강점은 181cm의 훤칠한 신장으로 코트 곳곳을 클리어 할 수 있는 넓은 스텝과 긴 리치라고 말 할 수 있겠다. 특히 포핸드에 강한 그녀는 긴 팔과 유연한 손목을 이용해 낮은 타점에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셔틀콕을 보낼 수 있어 상대 선수로써는 마지막 라켓에 닿는
임팩트 순간까지 셔틀콕의 궤적을 예측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타고난 감각과 컨트롤이 없다면 어려운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수비와 동시에 공격을 하고 포인트를 따낸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유럽인으로써 배드민턴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큰 키와 리치를 이용한 파워형 플레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본으로 한 세밀하고 기술적인 두뇌 플레이에 있다고 평가 받는다. 배드민턴에서 큰 신장은 고각의 스매시를 하는 데에는 용이하지만, 민첩성을 요구로 하는 네트플레이에서는 다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티네 바운은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최대로 이끌어내고 큰 신장에 민첩한 중심이동과 기민한 테크닉들을 더해 유럽의 완성형 선수로 우뚝 설 수 있었다.

Late But Best
그녀가 대기만성형 플레이어로 불리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늦은 커리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노르웨이 오픈을 시작으로 2004스위스오픈, 2005년 이태리오픈, 2007년 스웨덴 오픈 등을 우승하면서 유럽의 정점에 오르게 되지만 아시아를 정복하지 못하고서는 유명무실한 유럽 챔피언일 뿐이었다. 2004년 그리스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에서 불가리아 선수 페탸 네델트체바에 패하는 것으로 그녀의 국제대회 커리어는 시작된다. 그리스 올림픽 32강 탈락 이후, 2005년 아킬레스건 파열의 부상을 입고 2007년까지 그녀는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3년 후 일본 오픈에서 상위 시드를 배정받은 모든 중국 선수들을 격파하면서 국제무대를 종횡무진하기 시작하였다. 2008년 북경 올림픽에 출전하여 메달을 따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전영오픈, 싱가포르오픈, 말레이시아오픈에서 3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특히 말레이시아 오픈에서는 발목을 접질린 상태에서도 통증을 견뎌내고 플레이를 계속하여 승리를 거머쥐는 집념을 보여주어 세계에 그녀의 이름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2009년에도 파죽기세로 세 개의 타이틀을 움켜쥐는데 성공한다. 홍콩의 조우미를 꺾고 우승한 말레이시아 오픈, 프랑스의 피홍얀을 꺾고 우승한 한국 오픈, 그리고 중국의 왕이한을 꺾고 우승한 덴마크오픈까지. 그야말로 쟁쟁한 선수들을 연이어 격파하고 당당히 2009년 세계랭킹 3위로 진입한 그녀에게 30대 배드민턴 선수란 수식어는 그녀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다지 어울리지도않는다. 2010년에는 유럽피언 챔피언과 생애 두 번째의 전영오픈 우승을 달성하고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게 된다. 2004년부터 7번의 국제대회 챔피언 경력과 2010년 1위 등극이라는 큰 타이틀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 은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올해 1월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계획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녀는 딱히 언제 혹은 어느 대회이후에 은퇴하고자 하는 계획은 생각해보지 않았으며 현재로서는 계속해서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티네 바운 선수의 환상적인 플레이와 배드민턴을 향한열정을 코트 위에서 계속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진다.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티네 바운
티네 바운은 작년 5월 29일에 현재 남편인 마르틴 바운과 결혼했다. 마르틴 바운은 덴마크 국가대표의 물리치료사로서 해외 대회가 있을 때마다 동행하여 티네 바운의 신체적인 부분은 물론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힘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둘은 부부금실을 자랑하듯 대회 진행 내내 옆에 붙어 앉아 많은 얘기를 나누는 모습들을 보이기도 하였다. 가정이 있으면 선수 생활을 병행하기는 힘들지 않는가라는 질문에도 그녀는 남편이 가사활동에 많은 부분 도와주고 대회 때마다 함께 해서 크게 힘든 점은 못 느낀다고 말하였다. 티네 바운이 가정과 아이들이 있음에도 훌륭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남편의 외조에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에 두 시간 씩, 두 번 강도 높은 훈련을 하지만, 2주에 한 번씩은 꼭 시간을 내서 가족과 주말을 보낸다고 하였다. 이렇듯 그녀는 훌륭한 배드민턴 선수인 동시에 가정에서도 좋은 어머니이다.

덴마크 배드민턴의 선구자 카밀라 마르틴VS 덴마크 배드민턴 최강 티네 바운
배드민턴이 비주류인 유럽에서 이렇게 굉장한 선수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티네 바운 그녀 자신의 재능도 있었지만, 먼저 그 길을 걸었던 동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1월의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도 했었다.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 그 질문에 그녀는 “롤모델까지는 아니지만 덴마크의 여자배드민턴 선수인 카밀라 마르틴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지금과 같이 배드민턴 기술이 현란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덴마크의 배드민턴 선수들을 위해 많은 것을 다져놨다고 생각한다” 라고 대답하였다. 카밀라 마르틴은 1974년생으로 티네 바운보다 다섯 살이 많은 전직 배드민턴 선수이다. 티네 바운 이전에 카밀라 마르틴과 레네 쾨펜(Lene Køppen, 1970년대 플레이어)은 전영오픈과 세계 타이틀을 우승한 유일한 덴마크 여성들이었다. 덴마크 챔피언십에서 13년 동안 우승하고 세계 챔피언 1996, 1998, 2000, 2002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기록은 티네 바운 전 세대의 유럽 최고 선수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다. 바운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올림픽 우승은 이루지 못하였지만, 그녀는 가히 덴마크 배드민턴계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카밀라 마르틴이 없고서는 지금의 티나 바운도 있기 힘들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마치 피겨계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김연아 이후로, 곽민정을 비롯한 많은 피겨 유망주들이 출현 한 것처럼 말이다. 티네 바운의 선배격인 카밀라 마르틴이 덴마크 배드민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후 세대를 위한 길을 다지는데 초석이 되어, 전 세대를 능가하는 티네 바운 같은 걸출한 선수들이 나올 수 있었다.

티네 바운은 긍정적이고 인간미가 넘치는 선수다. 시합 때 진지하고 강인한 모습에 위압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 외에 일상생활에서 그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밝고 친근한 여성 같은 느낌이다. 평소에도 웃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그녀는,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경기를 빨리 시작하고 싶고 모든 경기가 기대된다고 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업으로 삼는다면 질릴 법 한데, 그녀는 배드민턴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경기가 안 풀릴 때나 예상외로 실수를 남발할 때 마음이 좋지 않지만 실수를 덮어두고 다른 것을 생각하려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지금의 나이까지 활발히 운동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다. 지금은 발목에 부상이 생겨 치료기간 중에 있지만, 개인 블로그 상에도 밝게 글을 쓰는 등, 부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녀가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한 말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믿고 열심히 정진한다면 언제가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을 믿는 힘. 이것이 지금의 티네 바운 선수를 있게 한 것은 아닐까?

W r i t e r 주 혜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