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왕뮤추 "I'm My Biggest En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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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11-04-27 15:10본문
I'm My Biggest Enemy!
Wong Mew Choo
배드민턴을 사랑하고 즐기는 이라면 말레이시아 여자 대표선수인 왕뮤추(Wong Mew Choo)의 이름 석 자를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왕뮤추를 현재 배드민턴 세계랭킹 1위이자, 같은 말레이시아 팀 대표인 리총웨이와의 로맨스로 기억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지 ‘제왕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은 이 선수의 뛰어난 실력과 스포츠 정신을 수식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배드민턴계의 새로운 돌풍 예고
왕뮤추는 1983년 5월 1일, 말레이시아, 페락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언니인 뮤켕(Mew Kheng)도 국가대표 선수였다니 어렸을 때부터 수준 높은 경기들을 접하며 성장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가 처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방년 20살의 나이로 2003년에 열린 동아시아 배드민턴 여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부터였다. 164cm의 키로 크지는 않지만 균형 잡힌 체구의 그녀는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받으면서 특유의 강한 참을성과 체력을 키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첫 대회 우승으로 맺어진 것이다. 그녀는 말레이시아 역사상 30년 만에 큰 배드민턴 대회에서 우승을 한 여선수로 기록되었고 여자 배드민턴계의 새로운 돌풍을 예고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공격 기술이 없어도 왕뮤추가 강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근력과 체력을 바탕으로한 수비능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모든 샷들을 후방으로 받아내며 상대방의 실수를 이끌어 내거나 득점 찬스가 올 때까지 랠리를 길게 이어 나가다 한방을 노리는 그녀의 전술은 아무리 강한 선수일지라도 상대하기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Dragon Slayer 왕뮤추
2003년 동남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한 이듬해인 2004년에는 눈에 띌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그녀였지만 2005년부터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준우승을 함으로써 괄목할 만한 결과를 내놓기 시작하였다. 2006년에는 멜버른에서 열린 커먼웰스(Commonwealth) 대회에서 말레이시아 팀이 영국을 상대로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는데 일조하였다. 왕
뮤추가 결정적인 시점에서 포인트를 낸 것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레이시아는 최초로 3-1로 영국을 누르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다. 2007년은 그녀 커리어의 최고의 한해가 아닐 수 없다. 프로톤 말레이시아 슈퍼시리즈에서 프랑스로 귀화한 중국선수 피홍얀과 독일로 귀화한 쑤후아이웬 등 전력 있는 선수들을 꺾고, 전영오픈에서는 중국의 루란을 이기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그녀가 2007년에 결국 일을 내고야 말았다. 광저우에서 열린 중국오픈에서 세계챔피언 주린, 올림픽 2회 우승의 장닝, 그리고 명실상부 당시 최고였던 시에싱팡까지 3명의 톱 중국선수들을 꺾으면서 중국오픈에서 우승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비(非)중국인이 되었다. 3명의 최강 플레이어들을 차례로 잡고 우승을 거머쥔 왕뮤추의 모습은 흡사 드래곤 사냥꾼이 드래곤을 한 마리씩 잡는 것을 연상케 하였다. 팬들이 그녀에게 붙여준 Dragon Slayer(드래곤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단연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끊임없는 부상
하지만 세계 강호를 상대로 연승을 이어가던 그녀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잦은 경기 출장과 특유의 전술은 그녀의 무릎과 발목에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여러 부위의 고질적인 부상들을 커리어 내내 달고 있는 것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2009년에는 시즌 초부터 부상을 당해 복귀 후에도 만족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육체적인 부담과 정신적인 부담을 동시에 안게 된 왕뮤추는 은퇴할 것을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의 코치인 미스번 시덱(Misbun Sidek)의 권유로 적어도 이번 아시안 게임까지 뛰게 되었다. 그녀는 대신 부상 이후로는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려고 하였다. 조금 더 적극성을 띄고 힘과 스피드를 내세워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플레이와 상대를 조이는 적극적인 네트 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국오픈에서는 현재 랭킹 1위 왕이한을 상대로 승리하기도 하였다. 이렇든 왕뮤추가 비록 랭킹 19위에 머물러 있지만 큰 경기에서 톱랭커들을 숱하게 꺾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리총웨이와의 핑크빛 로맨스!
왕뮤추와 리총웨이는 고교시절 친구였다. 청소년 국가대표로 운동을 할 시기부터 둘은 고된 훈련을 서로 의지하며 견뎌냈다. 당시 리총웨이는 이미 왕뮤추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만큼은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비록 왕뮤추가 1살 어리지만 리총웨이는 그녀에게 학교 공부에 대해 자주 물어보며 같이 있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었다. 한결같고 믿음직하게 항상 곁에 머물렀던 리총웨이는 결국 왕뮤추의 마음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리총웨이가 유망한 배드민턴 선수로 먼저 이름을 알리게 되자 그들은 몇 년간의 비밀 연애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표정과 대화는 감추기 힘들어서 그랬을까? 기자들은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점차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에 대해 물어볼 때면 그저 둘은 자신들의 관계를 “좋은 친구 사이”라로 일관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고국인 말레이시아를 벗어나자 이 커플의 태도는 180도 변하였다. 2007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슈퍼시리즈에서 둘의 모습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조심스럽기만 했던 둘의 모습은 더 이상 없었으며 둘은 서로를 챙기기 바빴다. 또한 중국에서 처음 슈퍼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왕뮤추는 인터뷰 당시 조심스럽게 “리총웨이는 굉장히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남자친구이다”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그후에 열린 홍콩오픈 전에서 왕뮤추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여 “우리는 서로를 위해 다이아몬드 반지를 샀다. 하지만 다른 의미가 있기 보다는 그저 사랑의 증표일 뿐이다”라고 말해 둘의 연인 관계를 확실하게 밝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서로의 관계로 인해 관심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하며 자신들의 이러한 대조적인 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어찌되었든 둘은 공식적인 연인임을 공표하였고, 이것이 왕뮤추와 리총웨이라는 세계적인 배드민턴 최강 커플의 탄생을 공공연히 알린 배경이다.
그리고 결별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며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던 둘도 지난해인 2009년 결별을 하게 된다. 항간에는 둘이 수년간(약7~9년)의 연애 끝에 2010년에 결혼할 계획이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였는지 몰라도 팬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굉장한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그리고 결별에 대해 서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둘의 결별에 대한 루머만 확산되고 있다. 혹자는 리총웨이와 여러 여성 배드민턴 선수들 사이의 스캔들에 그 이유를 두기도 했으며 또 다른 이는 리총웨이의 코트 밖 사생활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소문이 무성할 때 올해 초 코리아 슈퍼시리즈 개최 당시 리총웨이는 왕뮤추와의 일에 대해 “배드민턴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또한 왕뮤추와는 좋은 동료 사이로 지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편, 둘의 연애사에서 리총웨이보다도 솔직함을 보여줬던 왕뮤추도 이번 결별만큼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9년은 연인이었던 리총웨이와 헤어지고 고질적인 문제인 부상으로 그녀에게 있어서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힘들었던 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Ups & Downs
왕뮤추는 그 누구보다도 Ups & Downs를 가장 많이 경험하고 있는 선수일 것이다. 2003년 그녀는 처음으로 출전했던 동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하여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신예스타라 불려 졌지만 바로 그 다음해인 2004년에는 1, 2라운드에서 줄줄이 탈락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그렇게 몇 년간 그녀는 단 한 차례의 우승도 없이 지내왔었다. 하지만 왕뮤추는 4년만인 2007년 중국오픈에서 우승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긴 기다림 끝에 얻은 성과였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달콤했을 그녀의 우승.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혀 오던 무릎과 등 부상이 그녀의 발목을 다시 잡았다. 최고의 자리에서 다시 떨어진 다는 두려움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오래 된 연인과의 결별. 이 모든 것이 왕뮤추에게는 시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그녀는 2009년 슈퍼시리즈 마스터스 파이널에서 당당히 우승을 한다. 예쁘고 여리기만 할 것 같은 그녀의 외모와는 달리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꿋꿋이 이겨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내면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대회였다.
왕뮤추 선수가 한 말 중 “I'm my biggest enemy”이란 말이 있다. 성과가 부족한 선수로서의 부담감과 그런 그녀를 향한 끊임없는 질타,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부상 그리고 결별의 아픔. 이 모든 것을 밟고 그 위에 올라 서야하기 때문에 그녀의 우승이 더 값지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왕뮤추, 그녀는 줄 곧 그래왔던 것처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다시 한 번 배드민턴 여자단식 최고 선수로 빛날 것이다.
주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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