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신이라고 불려도 되는 사나이 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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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15-06-30 20:23본문
신이라고 불려도 되는 사나이
Living Legend, Lin Dan
어떤 종목에서 매우 뛰어난 선수를 가리켜 ‘신계의 영역’에 있는 선수라고 부른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들이 축구의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다. 팬들은 이 둘을 가리켜 인간계를 넘어 신계에 속해 있는 선수라고 부른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신계 영역에 속해 있다고 봐도 될 배드민턴 선수를 선택하라면 단연 이 선수밖에 없다. 린단.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로도 평가 받는 린단은 지난 10년간 그래왔듯이 여전히 세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어떤 대회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 받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라이벌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선수가 바로 린단이다. 차원이 다른 실력과 정신력으로 린단은 그간 수많은 성적을 거뒀고, 이제 올림픽 3연패라는 위대한 도전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린단, 그는 살아있는 배드민턴 전설이다. Writer 박대협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첫 경험, 2004아테네올림픽
린단의 여러 업적에 가려져 있지만, 린단도 올림픽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의 첫 도전이었던 2004아테네올림픽에서였다. 린단은 1번 시드를 받고 출전했지만 1회전(32강)에서 로날드 수실로(싱가포르)에게 패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패기만으로는 다가갈 수 없었던 세계 정상이었다.
주니어시절부터 린단은 소위 싹수가 보였던(재능이 남달랐던) 선수였다. 2001년, 고등학생 2학년 신분으로 린단은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다. 당해 열렸던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중국의 단체전 우승과 개인전 동메달 획득을 따낸 후였다. 대표팀 동료 바오춘라이와 함께 린단은 중국의 차세대 남자단식을 책임질 왼손잡이 원투펀치로 기대 받았다.
린단의 상승세는 주목할 만 했다.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걸출한 공격력은 린단의 주무기였다. 강한 손목힘을 바탕으로 린단은 신예의 패기를 국제 무대에서 뽐내기 시작했다. 최근 강세를 보이는 모모타 켄토(일본)의 약 12년전 모습이 린단이었다. 꾸준히 국제 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린단은 올림픽에서도 1번 시드를 받으며 금메달 후보로 평가 받았으나, 결과는 1회전 탈락이었다. 후에 린단은 "너무 이기려고만 했다. 즐기지 못했다"라며 본인의 실패를 복기했다.
난세의 영웅으로 등극, 베이징올림픽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은 인도네시아 국민 영웅으로 등극한 타우픽 히다얏의 차지였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남자단식은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이 번갈아 가며 국제 무대 상위권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린단은 중국을 대표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리총웨이가 뜨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현일이, 덴마크에서는 피터 게이드가 각 국가를 대표해 우승을 노크했다.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타우픽이었다. 올림픽에 이어 타우픽은 2006도하아시안게임까지 접수했다. 린단과 리총웨이는 아직까지는 미완의 대기였을 뿐이다. 린단과 리총웨이는 그들의 다른 두 성품으로 인해 팬들에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온화하고 차분한 성품의 리총웨이는 '순둥이' 이미지로 기억되는 반면, 다혈질에 심판 판정에 언제나 불만 많았던 린단은 '악동'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린단의 악동 기질은 2008년 들어 폭발하고 마는데, 첫 사건이 한국 팬들에게도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소위 '린단의 난'이다. 2008코리아오픈 결승전 이현일과의 경기에서 선심 판정에 불만이 쌓였던 린단은, 당시 한국 대표팀 코치였던 리마오에게 라켓을 집어 던지며 육두문자를 주고 받았다. 당시만 해도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던 린단이었다. 린단의 기행은 자국 내에서도 계속됐는데, 2008년 4월, 지신펭 코치에게 폭행을 가하며 하극상을 일으켰다. 연이은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린단은 악동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당시 린단에게 어떤 수위의 징계가 내려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으나, 의외로 린단은 이때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린단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실력 외적으로 올림픽 도전에 실패할 뻔 했지만 린단에게는 천운이 따랐다.
그리고 린단은 베이징올림픽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랐다. 군웅할거 시대에 등장한 난세의 영웅이었다. 악동 린단이 쟁쟁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당당히 세계에 알린 대회는 베이징올림픽이었다.
천하를 평정하다, 런던올림픽
베이징올림픽 이후, 세계배드민턴은 린단, 그리고 리총웨이 양웅 체제로 변하기 시작했다. 피터 게이드와 타우픽 히다얏은 서서히 노쇠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다른 라이벌들은 린단과 리총웨이에 근접하지 못했다. 린단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8월에 열렸던 모든 메인 이벤트(세계선수권 3회, 올림픽 1회)를 독식했다. 리총웨이가 슈퍼시리즈 최강자였다면, 린단은 알짜배기만 골라 가졌다.
린단의 독주는 2010년, 다시 한번 절정에 이르렀다. 12월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라선 것이다. 남자단체전, 남자단식에서 모두 우승한 린단은 대회 MVP에 선정되는 겹경사까지 맞으며 중국 내 최고 스포츠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린단은 이 기간 그의 악동 이미지마저 탈피한 모습을 보였다. 언제나 퉁명스럽고 사납기만 했던 린단은 그의 실력에 걸맞은 쇼맨십과 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언론과의 인터뷰 빈도도 늘어났다. 혹자는 시에싱팡과의 약혼(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직후)이 가장 주효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며 린단이 소위 철 든 것이다.
2011년은 린단과 리총웨이의 라이벌전이 뚜렷했던 시기. 전영오픈을 리총웨이가 차지하며 1년 앞으로 다가온 런던올림픽 전초전의 주인공이 됐으나 2011세계선수권에서는 린단이 역사에 남을 명승부 끝에 리총웨이를 꺾으며 생애 네 번째 세계선수권자가 됐다(이 경기는 배드민턴 팬들이라면 꼭 찾아 시청하기를 권장한다).
안정적으로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낸 린단은 올림픽에서 승승장구하며 다시 한번 리총웨이와 리턴 매치를 갖는다. 하지만 여전히 승자는 린단이었고, 패자는 리총웨이였다. 4년 전 영웅으로 등극한 린단이 명실상부하게 배드민턴 남자단식 천하를 제패했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런던올림픽 이후, 은퇴?
2012런던올림픽을 끝으로 많은 남자단식 선수들이 은퇴했다. 특히 피터 게이드와 타우픽 히다얏의 은퇴는 남자단식 한 세대의 종결을 의미하는 바와 같았다. 최근 국제 무대에 다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이현일도 이때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었다. 린단도 이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였다. 베이징올림픽, 광저우아시안게임, 런던올림픽까지 쉼 없이 달려온 린단이었고, 부와 명예는 이룰 만큼 이뤘기 때문에 린단이 은퇴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올림픽 이후 린단의 행보는 그의 은퇴를 암시하는 듯 했다. 물론 동기부여는 떨어졌을 지 몰라도 린단은 2012년 BWF 공식 국제대회에 더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초반도 마찬가지. 린단이 출전한 대회는 2013아시아선수권 뿐이었다. 린단의 세계랭킹은 어느덧 286위까지 떨어져 있었다.
화려한 귀환, 세계선수권 5회 우승, 2013세계선수권
하지만 린단은 또다시 코트로 복귀했다. 그의 복귀 무대는 2013광저우세계선수권이었다. 엄밀히 린단은 참가 자격이 없었다. 세계선수권 남자단식은 64강부터 열리는데, 린단의 세계랭킹은 세계선수권 참가 기준에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최측의 배려, 흥행을 노린 BWF의 허가 속에 린단은 와일드카드로 세계선수권에 참가할 수 있었다. 또한 운 좋게도 리총웨이와 다른 대진표에 속하며 손쉽게 대회를 풀어 나갔다. 1년 만에 다시 결승에서 만난 이 둘은 명승부를 펼쳤지만 결과는 맥 빠지게도 리총웨이의 부상 기권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우승으로 린단은 복귀전에서 그의 건재함을 다시 한번 과시했고 세계선수권 단일종목 최초 5회 우승이라는 금자탑마저 쌓았다.
2013세계선수권 우승은 세계배드민턴 계에 의미하는 바가 컸다. 두문불출한 모습의 린단이었지만 린단은 그래도 린단이었다. 리총웨이를 비롯, 라이벌 선수들은 린단에게 아직이라는 인식을 다시 한번 심어줬다. 원래 대회 참가에 불성실했던 그였기 때문에, 린단이 꾸준히 대회에만 참가한다면 세계 최정상으로 쉽게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을 넘어 확신으로 돌아 섰다. 끝판왕은 그를 위한 단어였다.
1단식 주자보다 무서운 후보 주자, 그리고 아시안게임 2연패
린단은 적당히 랭킹 포인트를 쌓아가며 2014년을 보냈다. 중국 내 랭킹 1위 자리는 후배 첸롱에게 넘겨준 지 오래였으나 린단은 개의치 않았다. 토마스컵(세계남자단체선수권), 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에서 린단은 너무나도 강력한 2단식(또는 3단식) 주자로 활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은 토마스컵과 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린단은 본인이 나선 경기에서 전승을 거뒀다. 오죽했으면 아시안게임 금메달 직후 이득춘 감독이 '오더를 잘 짜서 이겼다'라는 말을 했을까. 이는 '이현일이 린단을 만나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서서히 국제대회 출전 횟수를 늘려가던 린단은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아시안게임에서도 2연패에 성공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2년 주기로 린단은 그 힘들다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우승을 너무나도 손쉽게 이뤄냈다. 린단과 같은 대진표에 속해 있는 선수들만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
이제는 요넥스 대표 모델
리총웨이의 도핑 양성 반응으로 세계배드민턴 남자단식의 이슈거리는 많지 않았다. 첸롱, 타고, 손완호 등이 2014년 후반 대권을 놓고 자웅을 겨뤘지만 이들은 린단, 리총웨이와는 다른 선수비 후역습의 스타일이다. 경기 내용만 놓고 본다면 린단, 리총웨이에 비해 흥미가 떨어졌다. 남자단식의 뉴스거리도 서서히 줄고 있었다.
2015년 1월 7일. 깜짝 놀랄만한 이적 소식이 발표됐다. 린단이 요넥스와 후원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중국은 중국 자국 브랜드인 리닝만을 그간 사용해왔으며, 린단은 리닝의 얼굴마담과도 같았다. 폐쇄적인 중국 배드민턴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린단의 요넥스 이적은 과거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리총웨이의 미래가 불분명했던 당시 시점에서, 요넥스는 리총웨이를 대체할 만한 (오히려 리총웨이 이상의 광고 효과를 불러 일으킬) 린단을 영입함으로써 세계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요넥스로의 이적은 린단에게도 새로운 동기부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린단 역시 그간 불성실했던 대회 참여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꾸준히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올해 우승은 아시안선수권 밖에 없지만 꾸준히 상위권에 자리하며 어느덧 세계랭킹도 2위까지 올랐다. 세월이 지나도 린단은 린단이었다.
한편 린단은 요넥스로의 이적 이유에 대해 배드민턴 재능 기부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린단은 리총웨이, 타우픽, 피터 게이드와 함께 배드민턴의 세계화를 이뤄내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밝혔는데,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요넥스와 함께한 선수들이다. 은퇴 후에도 국제 배드민턴의 발전에 꿈을 꾸고 있는 이가 바로 린단이었다.
불세출의 배드민턴 스타, 대기록에 도전한다
1992년,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래로, 한 선수가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을 가장 많이 차지한 것은 2회뿐이다. 이들은 장닝(여자단식, 2004, 2008), 게페이-구준(여자복식, 1996, 2000), 장준-가오링(혼합복식, 2000, 2004), 자오윤레이(여자복식, 혼합복식, 2012)로, 린단까지 포함한다면 총 7명의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두 개씩 보유하고 있다.
린단은 여기에 최후의 도전장을 내밀 태세다. 전무후무한 올림픽 금메달 3회 획득. 현재까지는 그 가능성이 대단히 충분해 보인다(린단과 함께 이 위치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는 현실적으로 자오윤레이 뿐이지만, 자오윤레이는 단일종목이 아니다).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지 않아도 린단은 상위 랭킹포인트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꾸준히 보여줬다. 예전 같지 않다는 몸놀림이지만 단기전의 린단은 다르다는 것을 불과 몇 달 전인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보여줬다.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들어 섰지만 전성기 나이대의 젊은 선수들은 아직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경기 결과와 실력으로 몸소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린단은 그간 약물과 부상으로 인한 장기 공백이 전혀 없었던 선수다. 누구보다도 몸관리가 완벽하며 잔부상으로 인한 랭킹 공백은 단기간만에 실력으로 메우고 있는 선수다. 여기에 남들이 갖고 있지 못한 메이저 대회 우승 경험과 강심장은 린단이 다가오는 리우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후보 0순위라고 자신 있게 예상할 수 있는 증거다.
최근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배드민턴에 이 용어를 접목시킬 수 있는 선수는 단 한명, 린단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린단의 금메달 걱정이다. 철없던 20대 중반을 넘어선 이후, 린단은 소위 완전체로 진화했고, 피터 게이드가 지어준 별명처럼 슈퍼 단이 되었다. 극강의 운동능력, 강인한 정신력, 남들보다 훨씬 많은 경험치, 그리고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강철 멘탈까지, 린단은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위대한 배드민턴 선수다. 여기에 린단은 뛰어난 스타성과 쇼맨쉽까지 보유하고 있다. 가끔 이러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과연 린단의 전성기는 오기는 한 것일까?" 신계의 영역에 올라선 이시대 최고의 배드민턴 선수, 그는 바로 린단이다.
프로필
이름: 린단(Lin Dan)
국적: 중국
생년월일: 1983년 10월 14일
신체: 178cm 70㎏
주종목: 남자단식
사용손: 왼손
사용라켓: YONEX VOLTRIC Z-FORCE II LD
사용신발: SHB02LTD
주요경력
올림픽 2회 우승(2008, 2012)
아시안게임 개인전 2회 우승(2010, 2014)
아시안게임 단체전 2회 우승(2006, 2010)
세계선수권 5회 우승(2006, 2007, 2009, 2011, 2013)
토마스컵 5회 우승(2004, 2006, 2008, 2010, 2012)
수디르만컵 5회 우승(2005, 2007, 2009, 2011, 2015)
슈퍼시리즈 파이널 1회 우승(2011)
아시아선수권 4회 우승(2010, 2011, 2014 2015)
전영오픈 5회 우승(2004, 2006, 2007, 2009, 2012)
국제대회 통산 57우승, 19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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