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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인천국제공항 스카이몬스 창단 첫 우승의 주인공 마지막에 웃은 자 김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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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21-01-0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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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스카이몬스 창단 첫 우승의 주인공 

마지막에 웃은 자 김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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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배드민턴코리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으로, 11월에 진행됐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스카이몬스(이하 스카이몬스) 남자팀이 2014년 창단 후 6년 만에 첫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스카이몬스는 지난 11월, 전남 해남군에서 열린 제63회 전국여름철종별배드민턴선수권대회(이하 여름철선수권) 남자 일반부 단체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밀양시청(8강), 삼성생명(4강), 국군체육부대(결승) 등 국내 강호로 손꼽히는 팀들을 연달아 격파했다.

스카이몬스 안재창 감독과 허훈회 코치는 나란히 김경태를 MVP로 선정했다. 김경태는 준결승에서 국가대표 허광희(삼성생명)를, 그리고 결승에서는 김동욱(국군체육부대)을 연달아 1단식에서 격파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대회 공식 MVP에 김경태가 선정됐을 지라도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김경태의 비상이었다. 김경태는 선수 생활 내내 주목 받지 못했던 선수였다. 팀의 에이스 선수였던 적은 없었다. 2년간의 공백 끝에 재입단한 올해도 3번 단식 역할로만 여겨졌다. 단순히 팀의 약점이 될 것 같았던 김경태는 이번 대회를 본인의 손으로 이끌었다. 스카이몬스 남자팀의 유일한 창단 멤버 김경태는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될 수 있었다. Writer 박성진 | Photo 이진혁(코이웍스)


김경태가 들려주는 스카이몬스 창단 첫 우승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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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축하한다. 소감은?

이번이 2014년에 창단 멤버로 들어오고 올해 복귀한 후 우리 팀의 첫 우승이다. 많이 간절했던 우승이라 기분이 매우 좋다. 감독님, 코치님도 다 좋아하시고 우리 선수들도 기분 좋다. 우리 팀 선수들이 잘 받쳐주고 믿음직하니까 믿고 마음 편히 뛰어서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이번 대회 본인 스스로 100점 만점 중 몇 점 줄 수 있겠나?

100점 주고 싶다. 하하. 매우 만족한다.


여름철선수권 첫 날부터 복기해보자. 단체전 첫 날인 11월 2일, 우승 후보로 손꼽혔던 스카이몬스 여자팀이 8강에서 패했다. 남자팀 분위기는 어땠나.

파이널 단식에서 (심)유진이가 시합할 때 그때 남자 선수들은 같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밥 먹으면서 생중계로 보고 있는데, 유진이가 패하면서 결국 단식 세 개를 모두 내주며 졌다. 남자 선수들 모두 "괜히 숙소 밖으로 나오지 말자, 숙소 안에 조용히 있자"며 서둘러 저녁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남자팀 미팅할 때에도 정말 신속하게 코치님 방으로 모였다. 하하. 분위기는 많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우리 남자 선수들은 준결승(11월4일)에서 이기기 전까지 여자 선수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남자팀은 16강은 부전승으로, 8강(11월 3일)부터 경기 일정이 있었다. 상대는 밀양시청이었다. 이때 2단식에 출전해 김용준(밀양시청)에 2-0(21-15 21-8) 승리를 거뒀다.

밀양시청은 16강에서 요넥스를 상대했다. 그런데 그때도 (손)주형이가 안 뛰고 용준이가 뛰었다. 주형이가 이번 시합에 뛰지 않는 것을 16강 경기를 보며 알았다. 그러면서 2단식에서 용준이랑 경기할 수 있었다. 용준이도 올해 운동을 많이 쉬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름 쉬웠던 상대와 첫 번째 경기를 가진 것이 전반적으로 좋았던 것 같다. 긴장감도 많이 사라지고, 신체 리듬도 경기에 맞게 잘 풀고 뛸 수 있었다.


4강(11월 4일) 상대는 삼성생명이었다. 전날 미팅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원래 우리 팀의 승리 공식은 앞에서 (손)완호 형이 단식 1개 잡아주고, 복식 1개 잡고, 파이널 가서 (정)기화가 승리하는 것이었다. 미팅을 할 때 완호 형이 쉽게 이기려면 그래도 (허)광희(삼성생명)를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기화는 황종수 코치님(삼성생명)을 만나지 않는 것이 승산이 높다고 봤다. 우리 팀 허훈회 코치님도 '경태 너는 누구랑 하던 앞에서 마음껏 뛰어라' 정도로만 주문하셨다.



내가 주역으로 뛴 시합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는 것에 엄청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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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오더를 교환하니 1번 단식에서 허광희랑 맞붙었다. 사실 스카이몬스 입장에서는 우리 팀 3단식 선수가 상대 에이스 단식 선수와 맞붙은 것이니 잘 쓴 오더로 보였다. 김경태는 소위 희생타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승리에 큰 기대는 없었을 것 같은데.

맞다. 삼성생명은 (허)광희가 무조건 1번으로 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 팀의 승산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손)완호 형과 (정)기화가 조금이라도 편안한 상대와 경기하는 것이 나았다. 나도 내가 광희에게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더라

도 그냥 져버리면 단체전 팀 분위기가 확 가라 앉는다. 그래서 처음 들어갈 때에는 '한 게임이라도 따 보자, 적어도 3게임까지는 가보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들어갔다.

1게임 초반부터 상당히 강하게 밀어 부쳤다. 그러면서 예상보다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21-13). 그리고 2게임에서도 광희가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상시 하던 대로만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광희가 페이스를 확 끌어 올리더라. 2게임에서는 코치님도 줄 것은 그냥 주고 하던 대로 하자고 주문하셨다. 그러면서 2게임은 내줬다(10-21).

3게임에서는 초반에 다시 한번 확 밀어 부쳐보자는 생각이었다. 4-8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광희가 부상을 당했다. 종아리가 올라온 것 같더라. 광희가 다치고 나서, 카운트를 보고 나를 쳐다 보더니 계속 경기를 뛰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나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 상태라도 나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만약 상대가 완호 형이나 기화였으면 광희가 기권했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허광희가 부상 당한 직후인, 4-8에서 시작한 랠리는 16-20 매치 포인트까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끌려 갔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경기를 뛰면서 뭔가 풀어낸다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광희가 다치니까 되려 내가 더 급해 지더라. 상대가 부상을 당했으니까 '4점 차이면 쉽게 역전할 수 있다,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욕심을 부리다가 실수가 많이 나왔다. 그렇게 매치 포인트를 먼저 허용하고 말았다.


그런데 연속 6득점에 성공하며 22-20으로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 이때는 무슨 생각이었나.

한 점만 주면 패하는 상황이었다. 이때는 '하나만 잡자'는 생각으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운 좋게 역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승리였다. 당시 심정은?

우선 1단식이 끝난 상황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삼성생명 이기고 결승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남아 있는 선수들의 부담감이 확 줄어들 수 있었으니까. 최종적으로 우리의 승리가 확정된 후에는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네 덕분에 이긴 거야'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나는 (정)기화 덕에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한다. 파이널 3단식에서 뛰는 것이 심적 부담이 엄청나다. 그런데 기화가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잘 뛰어줘서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자 선수들의 반응은 어땠나.

경기 중에도 선수들이 동영상 캡쳐해서 보내주고, 축하 메시지도 보내고 했다. '오빠들 수고했다, 축하한다, 고맙다' 등의 내용이었다. 여자팀을 맡고 계신 전종배 코치님도 "우리가 단식 세 개 내주고 패한 것을 너희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삼성생명을 잡긴 했지만, 아직 우승까지는 한 단계 남았다. 결승을 앞두고 전날 미팅에서는 어떤 내용이 오갔나.

결승 상대는 국군체육부대였다. 국군체육부대를 상대로는 우리 복식 2개가 모두 앞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선 단식에 힘을 바짝 줘 3-0 오더를 쓰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가려면 기화가 파이널 3단식에 출전하는 것이 낫다고 

결정했다. 삼성생명 전에는 내가 1단식 출전이 확정난 상태에서 미팅이 끝났는데, 국군체육부대 전에는 나랑 완호 형이 앞선 1, 2단식에 출전하지만 세부 순서는 결정 나지 않았다. 내가 결승에서도 내가 1단식에 뛰는 것은 나도 결승 당일 오더를 교환한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대망의 결승전(11월 5일) 날이다. 말한 대로 1단식에 출전해 김동욱에 2-1(21-19 17-21 21-19) 승리를 거뒀는데.

사실 (장)현석이와 붙길 바랬다. 현석이랑은 같은 팀에도 있었기 때문에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동욱이로 결정 났지만 이 정도도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오늘도 열심히 해야지' 정도의 생각으로 경기에 들어갔다. 이길 것이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다.


준결승전과 마찬가지로 1게임은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 부치며 승리했다(21-19). 그런데 2게임에서는 유리한 상황에서 역전 당하며 패하고 말았는데(17-21).

게임도 17-13까지 이기고 있었다. 이때 '나는 4점 밖에 안 남았고, 동욱이는 8점이나 남았으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공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트로크 하나 하나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자꾸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까 1~2개 그냥 줘 버리고, 어영부영 잡히다 보니까 지금까지 잘 해오던 게 한번에 리듬이 무너지더라. 그러면서 8점 연속 내주고 그대로 역전패를 당했다.


3게임은 박빙이었다. 하지만 역전을 끝까지 허용하지않으며 결국 최종 승리를 거뒀다(21-19).

2게임 때 욕심을 내서 졌기 때문에 3게임은 스트로크 하나 하나에 더욱 신경 썼다. '똑같이, 똑같이, 욕심 부리지 말고'라는 생각을 3게임 내내 했다. 상대 실수만 유발하자는 생각으로 계속 뛰었다. 코치님도 옆에서 '힘 들어도 욕심 부리지 말아라, 상대도 똑같이 실수 나오니까 계속 뛰어라' 정도로만 주문하셨다.

그래서 나도 죽자고 뛰었던 것 같다. 랠리가 길어지면 나도 힘든데 (김)동욱이도 힘들어 하는 게 보이더라. 스트로크도 불안해지고. 거기서 조금더 힘이 났던 것 같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조금 더 뛰자는 생각이었다.


결국 스카이몬스가 3-0 승리를 거두며 창단 첫 단체전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기록을 찾아 보니 김경태 본인에게도 첫 단체전 우승이더라.

그렇다. 요넥스에 있었던 시절에 팀은 우승한 적이 있는데, 나는 당시 오더에 포함되지 않아 성적에 없다. 내가 안 뛰어도 '팀이 우승했으니까 마냥 좋다'이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히 감격이 달랐다. '네 덕에 우승했어, 진짜 잘 했어' 등의 연락도 많이 받았다. 축하해주는 사람들도 많았고. 우승까지 했는데 그런 이야기까지 들으니까 만족감이 정말 높았다. 내가 주역으로 뛴 시합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는 것에 엄청 만족했다.


안재창 감독은 뭐라 하던가.

준결승에서 (허)광희 이겼을 때에는 '지금까지 이거 보여주려고 실력 숨겼냐, 잘 했다, 포기 안 하고 뛰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해주셨다. 결승 끝나고 나서는 화장실 앞에서 만났는데 수고했다고 악수를 먼저 해주시더라. 나중에도 따로 찾아 와주셔서 격려도 또 해 주셨다. '네 덕분이다, 네가 이팀을 창단시키고 네가 첫 우승을 시켰다' 정도의 말씀이었다. 워낙 무뚝뚝하신 감독님이긴한데 이번에 기분이 참 좋으셨던 것 같다. 나도 역시 기분 좋았고. 하하.


스카이몬스와의 계약이 현재까지는 올해까지인 걸로 알고 있다. 즉, 이번이 본인의 마지막 대회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이번에 해남에 내려올 때 '내 마지막 시합이다'는 생각을 갖고 내려왔다. 그리고 시합 후에는 '마지막 은퇴 시합이 우승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기뻤던 것 같다.


‘나는 주연인 적이 없었다’ 완생을 실현한 미생은 마지막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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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미안한 소리의 연속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강남구청(2009-11), 요넥스(2012-13) 소속이었다. 하지만 경기 출전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불러주는 대학 팀이 없었다. 그러면서 강남구청에 연습생으로 1년 계약했다. 당시 강남구청의 주축 멤버들이었던 형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6살~10살 정도? 형들이 운동도 잘 했으니까, 시합은 형들이 많이 뛰었고, 나는 생활적인 부분에서 형들을 서포트 하는 막내 역할에 충실히 했다. 그래도 감독님과 형들이 모두 좋게 봐 줘서, 2011년에는 정식 선수로 강남구청과 계약을 맺었는데, 결국 팀이 해체되고 말았다.

요넥스에도 2년 정도 있었는데,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다. 그러면서 2013년 요넥스 팀에서 방출됐다. 이때 처음으로 '운동을 그만 두고 다른 진로를 알아봐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스카이몬스의 창단 멤버로 팀에 입단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안재창 감독님이 누구한테 나를 추천 받았나는 모르겠지만 나를 찾아 주셔서 운 좋게 이 팀에 입단하게 됐다.


하지만 스카이몬스에서도 역할은 언제나 조연이었다. 단식 선수일 때는 언제나 팀의 3번 선수, 그리고 복식 선수일 때는 팀의 B조 복식 역할 뿐이었다.

'네가 우리 팀의 에이스다, 네가 이겨줘야 한다' 등의 말을 운동 하면서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잘 하는 팀과 경기를 할 때는 '저 팀 3번 선수만 잡아 줘' 정도의 기대감뿐이었다. 단체전 성적을 내도 팀원들이 잘 해서 입상했었다.

스카이몬스 초기에도 우리 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았으니까 내 역할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 역할을 잘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2017년에는 팀의 트레이너 생활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수 등록은 했었지만, 정식 역할은 트레이너였다. (안재창) 감독님께서 트레이너를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별 고민 안 하고 알겠다고 했다. '안 했었던 업무니까 한번 경험해 보자, 팀 프런트 업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나중에 도움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감독님이 나를 잘 챙겨주신다고 느껴지니까 바로 알겠다고 했다.

감독님은 트레이너를 더 길게 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은데, 계속해서 입대 영장이 나왔다. 더는 미룰 수 없어서 2018년 1월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했다. 복무 일자가 축소되며 2019년 12월에 소집 해제됐다.


올해 스카이몬스 복귀는 의외였다. 2년간 코트를 떠나 있었던 김경태가 다시 스카이몬스의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공익근무 끝날 때 즈음에 감독님께 전화가 왔다. '선수 한 명 비는데 1년 선수 더 할래?'의 내용이었다. 예전에 요넥스에서 방출될 때도 감독님이 그렇게 전화 주셔서 이 팀에 입단한 것이었다. 팀에 선수로도 있고, 트레이너로도 있을 때에도 감독님이 그렇게 나를 잘 이끌어 줬다. '팀에 도움될 수 있다면 가서 하겠습니다'고 말하며 결국 선수 생활을 1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원래 공익근무 끝나고 어떤 일을 하려고 했나.

생활체육 레슨 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 전화 받고 선수 1년 더 하는 것으로 결정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졌다. 요즘 생활체육 레슨하는 코치들을 보면 레슨 다 중지되고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한다. 나는 그 부분에서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감독님께서 2017년에 트레이너 하자고 제의해주신 것부터 시작인 것 같다. 만약 내가 그때 트레이너 안 하겠다고 했으면 이 팀과 3년 정도 공백기가 생기는 거였고, 작년 말에 나를 찾아주지 않으셨을 것 같다. 지금까지 감독님 말씀을 따른 것이 계속해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 왔다.


이번 우승을 기점으로 팀에서 또다시 재계약 하자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이렇게 그만둬도 후회는 안 할 것 같다. 실업팀 생활도 오래했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다고 생각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듯, 잘 했을 때 선수를 그만둬도 좋을 것 같다.


만약 다른 팀에서 선수 제의가 들어 온다면?

주변에서 장난으로 '다른 팀에서 스카웃 제의 들어 오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다른 팀은 생각하지 않는다. 안 감독님 밑에서 선수 생활을 끝내고 싶다.


안재창 감독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것 같다. 김경태에게 안재창 감독이란?

은인. 남들에게 어떨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은인이다. 트레이너를 할 때에도 항상 같이 붙어 있으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러면서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배드민턴을 그만 두더라도 언제나 감독님이랑 잘 이어 가면서 배우고 싶다. 여전히 감독님께 배울 점이 많다.


냉정히 에이스 급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 결과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후배 선수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나는 '내가 운동을 잘 한다,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 없다. '팀에 피해는 안 끼쳐야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이다. 쉽게 포기를 하지 않는 성격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하려 한다. 그래서 어지간히 아픈 것 아니고서는 운동을 쉬려 하지 않는다. 직업이 운동 선수라면 운동을 해야 한다.

요즘 어린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조금만 아파도 쉬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위쪽의 30대 선수들에 비해 멘탈적으로 약한 것 같다. 조금만 힘들면 거기까지만 하려 하고, 더 힘든 건 안 하려 하는 것 같다. 오히려 그러다 보니 내가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린 선수들이 강한 마음으로 운동하고 했으면 형들 밀어내고 시합 뛰고 했을 텐데, 아직도 나보다 나이 많은 형들이 여전히 시합을 더 잘 뛴다. 선수 수급도 신인 선수들의 영입 아니라 고참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지 않나. 그런 부분들은 후배 선수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운동 선수라면 운동 선수에 맞게 정신력도 더 강하게 잡아야 한다.


김경태에게 인천국제공항 스카이몬스란?

내 운동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 준 고마운 팀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뛰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팀 생각은 전혀 없다. 나의 선수 생활은이 팀에서 끝이다. 이번에 좋은 동료들과 함께 좋은 마음으로 마지막 시합을 마쳐서 기분 좋다.


좋은 소식이 들리던데? 이번 시즌이 끝나고 결혼한다고 들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겠다. 수진아(예비 신부), 잘 할게~ 잡지에는 이 정도만써 달라. 하하하.



PROFILE

이름 : 김경태(KIM KYOUNG TAE)

생년월일 : 1990년 6월 20일

신체 : 180cm / 71kg

혈액형 : B형

출신학교 : 밀양초-밀양중-대구고

별명 : 뽀글이

취미 : 골프

특기 : 아재개그

루틴 : 서비스 전 심호흡

징크스 : 시합 전 국에 밥을 말아먹지

않는다(말아 먹을까봐)



박성진 기자 

tags : #남자 단식, #김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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