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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최고를 뜻하는 단어는 전부 그의 수식어로 적격이다, 김동문 교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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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24-07-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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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기


이어지는 방황과 짧은 슬럼프

그러나 중학교를 그렇게 보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사정은 같았다. 키는 조금씩 자라는데 바싹 마른 몸은 그대로였고 고등학교 1학년 때도 중학교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또래에게 밀리며, 선배들에게 치이며 운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친구들은 주니어국가대표에 선발됐고 추천에 의해 한 번이라도 기회가 생기는데, 한 번도 기회가 오질 않아서 선수로서 제일 더디게 활동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고등학교 1학년 때 배드민턴을 그만두려는 시도를 하게 됐다. 어찌 보면 슬럼프라고 할 수 있는 시기를 17살 때 겪은 것이다. 주전이 안 되고 계속해서 밀린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만큼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도 집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알바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후배와 무작정 찾아간 이발소에서 일을 시켜달라기도 했고, 당구장도 찾아갔었다. 결국 당구장에서 일하게 됐고 후배는 외향적인 성격 덕분에 볼을 닦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했고, 김동문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재떨이를 비우고 바닥 청소하는 일을 맡았다. 운동을 끝내고 와서 버스 끊기기 직전까지 일하다가 집에 가고 이런 생활을 1주일 정도 짧게 했었다. 라켓을 완전히 손에서 떼지는 않았고 그만둘 준비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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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럼프를 극복하고 드디어 두각을 제대로 나타내다!

형들이 어머니 리어카를 끌어다주고 리어카 뒤에 매달려만 갔던 어린 시절을 지나 그가 어머니의 리어카를 끌고 시장에 모셔다드리고 등교하던 시기였다. 체육 특기자라 정규수업 전 자습시간이 필수가 아니었기에 아침에 시장에 어머니를 모셔다드리고 등교하기를 반복했다. 이를 모른 담임선생님은 처음에 운동부라 뺀질댄다며 혼내셨고, 리어카를 끄는 모습을 우연히 들키게 된 순간에는 선생님에게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선수 생활을 할 때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남들보다 운동에 대한 집념이 커진 계기가 됐고, 어렵고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간절한 바람을 하늘에서 들었는지 키가 갑자기 10cm 이상씩 크게 되고 1학년 말부터는 위에 선배들도 이기면서 또래보다 더욱 돋보이게 됐다. 알바를 그만두게 된 것은 그 당시 감독의 주니어국가대표 추천 덕분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한 번씩 주니어국가대표를 해 봤기 때문에 감독이 가장 마지막으로 그를 추천했고, 그렇게 꿈꾸던 주니어국가대표를 하게 됐다. 알바를 시작한지 1주일 만에 그만두게 되었지만, 당구장 사장님은 그를 좋게 봤다며 5만원을 손에 쥐어주셨고 앞으로 더욱 잘되라고 응원했었다. 아직도 그때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고 다시 한 번 꼭 뵙고 싶은 분 중 한 명이다. 주니어국가대표 훈련을 받고, 6개월 만에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 후 선물을 들고 당구장에 찾아가서 사장님께 감사함을 전했다. 그때의 인연을 지금도 유지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인데 어려서인지 인연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5편에서 이어집니다.

 

tags : #김동문, #원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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