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칼럼] 배드민턴의 로이스터 리마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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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11-04-27 15:16본문
한국 남자 배드민턴에 이용대-정재성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약했던 남자 단식에 이제 유망주, 기대주를 넘어 간판으로 발돋움 하는 선수가 있다. 박성환(26, 국군체육부대)이다.
‘린단 킬러’라 불렸다. 세계 최강이자 배드민턴의 황제라고 불렸던 중국의 린단만 만나면 힘이 났다. 박성환은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린단과 3승3패의 동률을 이루고 있었다. 박성환은 린단의 천적이었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린단 천적 다운 모습이 여지없이 발휘됐다.
박성환은 지난 8월30일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피에르 드 쿠베르탱 체육관에서 끝난 2010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남자단식 4강에 올랐다. 비록 결승진출에 실패했으나 박성환 개인으로서는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결승 진출 보다 더 큰 수확은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었다.
특별훈련이 계속됐다. 모든 훈련의 초점을 세계선수권에만 맞춘 덕분이다. 이를 위해 지난 두 달여 동안 국제대회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대신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세계적인 선수들을 길러낸 리마오 코치와 함께 집중훈련을 해 왔다.
집중훈련은 박성환의 체력과 파워를 몰라보게 높였다. 힘이 세지자 스매싱이 더욱 강해졌다. 리마오 코치는 박성환의 스윙을 교정했다. 스매싱의 파괴력이 더욱 높아졌다. 리마오 코치의 집중 조련은 린단을 또 울렸다. 박성환은 8강전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선수권 4연패에 도전한 중국의 에이스 린단을 2-0(21-13 21-13)으로 완파했다.
사실 비밀은 단순한 훈련 강화에 있지 않았다. 박성환은 인터뷰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했다. 박성환은 “4개월전에 중국어 통역이 생긴 뒤부터 리마오 코치와 소통이 잘됐다. 믿고 따라가니 확실하게 좋아지고 있다”며 “경기막판 운영을 잘못하는 등 아직 미숙한 점이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성장할 여지도 크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스윙의 교정은 야구와 마찬가지로 미묘한 부분이다. 소통의 확신이 없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지녀 온 스윙을 바꾸기 어렵다. 박성환의 성공은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이다. 배드민턴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코치와 선수의 호흡이 중요하다.
리마오 코치는 한국 배드민턴계의 보배나 다름없다. 배드민턴 최강국에서 한국을 위해 넘어 온 ‘배드민턴계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한창 훈련에 열중이던 리마오 코치를 만났다. 부리부리한 두 눈에 훤히 벗어진 머리. 배드민턴 라켓이 휙 소리 나도록 휘두르는 그의 손 끝에서는 외모와 함께 중국무술 고수 같은 풍모가 느껴졌다. 실제 그의 배드민턴은 중국 무술 고수를 닮았다. 휘두르고 찌르고, 상대의 허를 노리는 고단수의 스윙. 배드민턴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두 검객의 한 판 대결이다. 특히 남자 단식이라면 더욱 무술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상대의 빈 곳을 노리고 찌르는 한 순간의 공격이 승부를 가른다.
그때도 리마오 코치는 박성환을 가르치고 있었다. 중국 현지에서 빌린 배드민턴 대표팀의 사설 연습코트에서 “강하게, 빨리”라고 외치는 훈련용 한국어는 이미 수준급이다.
리마오 코치는 당시 베이징올림픽에서 자신을 쫓아내다시피 한 중국 배드민턴의 심장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사실 묻기가 껄끄러웠다. 자신의 조국인 중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최고 인기 종목 중 하나인 배드민턴에서 금메달 싹쓸이를 공언한 자신의 조국. 그곳에서 그들의 목표를 꺾는 일에 조금은 복잡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랬더니 가뜩이나 부리부리한 눈이 더 커졌다. “그러면 당신은 한국 대회에 참가한 중국 여자 하키 대표팀 김창백 감독에게 져줄 거냐고 물어볼 테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한국 대표팀 코치가 된 것은 당연히 중국을 꺾기 위해서다”라고 못을 박았다. “반드시 본때를 보여준다”라며 호쾌하게 외쳤다.
중국 무술 고수의 호탕한 웃음이었다. 물어본 기자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리마오 코치의 말은 정답이었다.
리마오 코치가 한국과 연을 맺은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막 끝났을 때였다. 효자종목이었던 배드민턴은 당시 금메달을 1개도 따지 못했고, 결국 세계 최강인 중국 코치를 영입하기로 했다. 마침 리마오 코치는 자신의 후배이자 현 중국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인 리용보에게 정치적으로 밀려난 상태. ‘팽’을 당한 리마오 코치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아테네올림픽이 끝나고 잠시 말레이시아로 팀을 옮겼다가 2007년초, 베이징올림픽에 대비해 다시 우리 대표팀에 합류했다.
중국도 리마오 코치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 게다가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코리아오픈 슈퍼시리즈 대회에서 린단이 리마오 코치에게 라켓을 집어던지는 바람에 사이가 더 좋지 않다. 당시 리마오 코치는 심판 판정에 불만인 린단에게 “심판이 항상 네 손만 들어줘야 하냐”며 화를 냈고 흥분한 린단은 라켓을 집어던졌다. 그날 경기 이후 린단은 한국에서 열리는 배드민턴 대회를 보이콧 하고 있다. 당시 올림픽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한 신화통신 기자는 “탁구대표팀의 탕나(당예서)와 함께 리마오 코치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정이 복잡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리마오 코치는 남자 단식을 맡고 있다. 박성환을 ‘린단 킬러’로 길러냈다. 이번 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린단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승과 제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커뮤니케이션의 벽이 걷혔기 때문이다.
야구도, 배드민턴도 마찬가지다. 로이스터 감독이 롯데를 3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인 소통의 노력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감독과 선수를 연결시키는 통역 커티스 정이 있었다. 그리고 배드민턴에서도 리마오 코치와 선수들을 연결하는 통역이 자리잡음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해결됐다.
로이스터와 리마오는 각각 자신의 스포츠에서 새로운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에서 닮았다. 로이스터는 지금까지의 야구와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야구를 한국 야구에 주입했고 리마오 코치 또한 전통적으로 약했던 남자 단식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둘이 정말 닮은 점은 호통칠 때의 모습이다. 로이스터의 호통도 정말 무섭지만, 리마오의 호통도 만만치 않다. 박성환의 성장은 어쩌면, 그 호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야구와 배드민턴은 그 스윙에 있어서 메커니즘이 똑 닮았다. 배드민턴의 스윙은 투구와 타격의 스윙과 닮아 실제 야구 선수들은 라켓을 휘두름으로써 스윙의 감각을 제대로 다듬기도 한다. 닮은 종목의 두 닮은 외국인 코치의 성장이 한국 스포츠의 발전과 한동안 계속 어우러져 이어가길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이용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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