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2010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첸진(Chen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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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11-04-27 16:16본문
린단은 린단,
나는 나!
2010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첸진(Chen Jin)
운동선수가 꿈이었던 아버지
1986년 1월, 첸진(본명 첸펑페이)은 중국 허베이성 한단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첸용은 열성적인 배드민턴 팬이었다.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해 모든 희망을 자신의 아들 첸진에게 걸었다. 첸진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배드민턴에 흥미를 느꼈다. 매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배드민턴을 쳤고, 첸용은 첸진이 배드민턴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래의 학생들 중, 그를 대적할만한 상대는 일찍이 없었다. 아들의 배드민턴 기술은 날이 갈수록 무섭게 발전하는데, 좋은 코치 한 명 없어서 되겠느냐고 생각한 첸용은 안훼이에 있는 친구에게 이를 말했다. 때마침 이 친구와 당시 난징 아마추어체육운동학교의 교장 진차오와 매우 친한 관계였고, 그의 소개로 첸진과 진차오와의 특별한 만남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아버지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친아버지다.” 누군가 첸진에게 진차오에 대해 묻는다면 입버릇처럼 이렇게 대답했다. 둘의 유별난 관계에 사람들은 첸진에겐 두 명의 아버지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진차오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제자들 중, 유독 첸진만을 아들로 여겼는데 우연히 그를 세계챔피언으로 키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둘의 감정은 일반 친부모자식간의 감정을 뛰어넘었다. 후에 진차오가 이사를 갔을 때, 첸진을 위해 방을 하나 남겨두기도 했다. 장기간 대표팀에
서 훈련을 받기 때문에 첸진은 집에 자주 오진 못했으나, 자주 진차오, 부모님, 할머니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중국 국내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첸진이 19만 위안을 받았는데 만 위안 만을 남기고 8만 위안은 허베이 고향으로 보냈고 10만 위안은 진차오에게 보냈다. 그만큼 첸진은 매우 효성스러웠다. 특히 첸진의 친부모님과 진차오간의 왕래도 잦으며 관계도 아주 좋다. 첸진에게 있어 진차오는 제2의 아버지다.
세계선수권대회 = 자기도전 + 자기초월
2010년 8월 31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개의 금메달을 휩쓴 중국 배드민턴 팀은 베이징 수도국제공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집중적으로 인터뷰세례를 받은 선수는 단연 남자단식 챔피언인 첸진이었다. “챔피언이 된
기분이 어떻습니까?” “좋아요!” 첸진은 조금의 흥분도 없이 짧고 명료하게 대답했지만, 이 챔피언 우승이 자신에게 얼마나 뜻 깊은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함에 따라 모두들 첸진의 아버지를 보면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아버지의 얼굴엔 미소와 기쁨이 가득했다. 아버지 친구들은 첸진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축하해줬는데, 이때마다 첸진은 귀찮은 내색 없이 하나씩 답장을 다 보내주었다. 그에게서 스타의 허세나 거만한 모습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주목적은 메달보다도 자기 도전, 자기 초월이었다.
변수라는 기회, 심리상태 조정, 그리고 우승
세계선수권대회 시작,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두 상대 중 한명인 태국의 폰사나가 무명의 타이페이 선수 쉬에쉬엔이에게 쓰러지면서 첸진의 길은 순탄해 보였다. 8강의 상대는 쉬에 쉬엔이였다. 하지만, 경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순조롭지 못했다. 심지어 아슬아슬했던 때도 있었다. 다행히 후반부에 들어 점차 자신의 능력을 정상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시합 후, 그는 경기 내내 상대를 아예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오늘 겨룬 상대가 폰사나였다면,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부터 상당히 중시했으며 충분히 준비했던 상대이기 때문이다. 쉬에쉬엔이와 폰사나의 경기를 봤을 때, 쉬에쉬엔이의 승리는 상대가 잘 치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의 실력이 딱히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여겼다. 나만 정상적으로 실력을 발휘하면, 이 경기는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다.”
첸진은 어이없는 실수를 막기 위해, 모든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자신의 심리상태를 잘 조절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 때, 8강 경기에서 린단이 우리나라의 박성환에게 패하면서 중국 팀 남단 우승에 대한 기대는 모두 첸진에게 쏠렸다. 그에겐 기회였다. 준결승전 남단 주 코치가 말했다.
“타우픽(인도네시아), 박성환, 게이드(덴마크) 그리고 너까지 4명 모두 우승할 기회가 있다. 누구의 심리상태가 좋은지가 관건이다. 차분하게 임해라,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마라.”
허나 이 상황에서 “생각하지 마라”하여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과와 우승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지만 이는 정말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 매일 밤 잠잘 때마다 생각했다. 어쨌든 남단 우승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 정말 우승을 차지하고 싶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웠다. “나한테는 아주 큰 보따리가 하나 있다. 이 보따리를 버려야 가벼운 옷을 입고 빨리 뛸 수 있을 것이다. 또, 내 자신을 믿어야만 모두가 정상적으로 실력을 발휘했을 때도 내가 그들보다 강할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이 지닌 부담을 떨치고 스스로에게 격려를 하며, 준결승에서 피터게이드와 맞서 싸웠다.
“게이드가 첫 게임에서 아주 빠르게 플레이 했다. 그래서 참을성 있게 긴 랠리를 이어가며 샷을 후방으로 받아내면서 상대의 체력을 소모시켰다. 그는 정말 잘 쳤다. 별다른 기회가 없었고, 그리 많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게임에서도 계속 같은 방법의 플레이를 고수했다. 게이드는 첫 번째 플레이 때만큼 좋은 체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참을성 없이 긴 랠리를 이어가지 못하고 맞불작전을 펼쳤다면 결과는 좋지 않았을 것 같다.”
말썽쟁이 허리
그가 여기까지 오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8년 토마스컵 중국 대 말레이시아의 준결승에서 2-2 동점상황에
있을 때, 하피즈(말레이시아)와 맞서고 있던 첸진은 이 중요한 시합에서 갑자기 허리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고통을 참아가며 끝까지 경기에 임했고, 중국 팀에게 결승 진출을 안겨줄 수 있었다. 경기 후, 총감독 리용보의 부축을 받아 경기장을 빠져 나와야 했다. 허리부상의 회복 지연은 그의 기술발휘와 심리상태에 영향을 끼쳤다. 베이징올림픽 남단 3, 4위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이현일과의 악전고투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1점을 획득했을 때, 그의 허리는 이미 아무런 감각이 없을 정도가 되어있었다.
“운동량을 높이기만 하면 허리가 마비가 되었다. 이틀 정도 쉬면, 다시 칠 수 있었지만, 활동량이 많아지면 또 괴로웠다. 허리 때문에 백 코트 동작이 우려가 돼 감히 할 수가 없었다. 모든 백 코트, 머리 위쪽 공에 영향을 주었다. 자연히 오버 헤드 스트로크, 스매시 등 많은 기술을 발휘할 수 없었다. 상대에게 가할 수 있는 위협의 크기는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다.”
그 시간은 첸진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불편했던 시기였다. 때로 그는 심지어 자신의 운동생애가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전, 새로 온 팀 닥터는 허리부분의 힘을 강화하는 등 전체적인 허리 치료를 진행했다. 허리부분의 힘이 점점 강해지면서, 첸진의 허리부상은 회복단계로 접어들었다. 허나, 첸진은 여전히 힘 있게 스매싱을 할 용기를 내지 못했고, 그의 심리상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팀 닥터는 매일 그와 기술 발휘 상황을 이야기하며 그를 격려해줬다. 대회 전 청도합동훈련을 통해 허리부상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린단에게 패했지만 결승까지 올라 은메달을 얻었고, 이는 그의 세계선수권대회 성적 중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이에 힘입어 2009년 후반기, 그는 조바심을 없애고 정상적 훈련이 가능해졌다. 스매시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플레이의 위협도 커졌다.
나는 나일뿐!
첸진의 남단 금메달이 세계배드민턴계에 불러일으킨 센세이션은 엄청났다. 로이터, AFP, AP통신까지 모두 첸진에 대한 보도를 했다. 이번 승리는 지금까지 린단의 그림자 아래에서 머물렀던 그의 상황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팀 총감독 리용보는 “첸진의 우승은 팀 전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오춘라이, 첸롱, 두펑위를 비롯해 다른 젊은 선수들에게도 희망을 보여주었다. 팀 전체에 앞으로의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좋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첸진을 항상 린단과 비교하였다. 그는 좀 무력해지긴 했지만, 이를 마음에 두진 않았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린단은 린단이고, 첸진은 첸진이다.” 그러나 린단의 성적과 훈련태도에 있어서, 그는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팀 내에는 리더가 필요하며, 어느 한 사람이 주도해서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또한, 린단은 확실히 아주 좋은 성적을 가지고 있고, 나도 그를 매우 존중한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운다. 사적인 자리에선 친구나 마찬가지다. 사실 난 린단의 패기와 훈련 시 가벼운 실수를 하지 않는 그의 진지함을 배워야 한다.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아주 많다. 이러면, 서로 발전하고 아주 좋은 것 같다.”
“나는 나다.” 이 말은 첸진이 줄곧 해오던 말이다. 혹자는 첸진의 기술적 특징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린단처럼 날카로운 기습공격으로 득점하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나에겐 드롭샷이 있다. 드롭샷이 없다면, 난 그 누구도 이기기 어렵다. 상대는 나와 경기할 때 조마조마할 것이다. 난 이러한 점을 이용해 공격하며, 공격능력을 변속시킬 것이다. 이렇게, 다른 선수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플레이의 특징을 버리지 않고 내 실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첸진. 날카로운 기습 공격은 없어도 그의 성격처럼 상당히 믿음직스럽고 견고한 플레이로 더욱 빛나리라 믿는다.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은 첸진에게 있어서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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