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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내가 가는 곳이 길' 황선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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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12-08-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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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코리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국가대표 출신 그것도 올림픽에 출전했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라면(특히 남자선수라면) 배드민턴 팀에서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비록 대부분에 속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가는 곳이 길이다.

적수가 없었던 배드민턴 신동
황선호. 경기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배드민턴 동호인들에게 조금은 낯선 이름일 것이다. 지금은 경기도에서 성공한 동호인 레슨코치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 그는 국가대표팀 남자단식 에이스로 활약하며 올림픽에 출전하는 등 화려한 선수 경력을 자랑한다.

황선호는 1975년생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동문 원광대 교수, 하태권 삼성전기 코치 그리고 이덕준 군산대 감독과 함께 동갑내기 4인방으로 전주진북초-전주서중-전주농고-원광대-삼성전기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팀을 늘 국내 최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배드민턴 신동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남다른 기량으로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동급생들 가운데 실력이 가장 뛰어나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에이스로 활약했다. 같은 학교 출신인 김동문과 하태권이 어릴 때부터 복식 전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를 발굴했던 임채경 감독은 “초등학교 때는 선호가 제일 잘했고, 다음이 덕준이었지. 동문이나 태권이는 다른 애들보다 늦게 운동을 시작해서 어릴 때부터 맨날 복식만 했어”라고 회상했다.

남자단식 에이스 하지만 아쉬운 한방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우리나라는 남자단식에서 92년 이광진(충주시청 감독), 김학균(김천시청 코치), 96년 이광진, 김학균, 박성우가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대표팀을 은퇴하면서 황선호는 대표팀 남자단식 에이스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큰 기복은 없었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부족했다.

“2000년 올림픽에 나가기 전에 기사를 읽었는데 나를 ‘미완의 대기’라고 표현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보지도 못했고, 내 성에 차는 게임을 한 적도 거의 없다. 대회 때마다 심적 부담감이 컸다. 그래서 늘 8강 혹은 16강에 머물렀다. 98년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긴 했지만 그건 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없다. 99년 헝가리와 노르웨이서키트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것이 국제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다. 물론 등급이 낮은 대회이긴 했지만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했던 대회로 기억하고 있다.”

황선호는 99년과 2000년 꾸준히 랭킹을 유지해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올림픽 출전 포인트를 쌓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 대회에서건 중위권은 유지했던 그였다.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고 열심히 준비하며 올림픽메달리스트의 꿈을 키웠지만 16강 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때 동문이, 태권이가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어서 올림픽을 기회로 나도 크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체력은 누구에게든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죽도록 뛰어서 올림픽메달을 목에 걸고 싶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오륜관에 있는 모래사장에서 혼자 스텝연습하면서 훈련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올림픽에 출전해보니까 역시 대단한 대회라는 것을 느꼈다. 출국할 때부터 경기기간 내내 대우 등 모든 게 다르더라. 1라운드를 쉽게 이기고 16강에 진출했는데 실력을 절반도 발휘하지도 못하고 졌다. 이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못해서 졌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자체에만 만족했던 같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 내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해본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짧았던 지도자 생활을 접고
올림픽이 끝나고 그해 그는 상무에 입대한다. 2년이란 군 생활이 끝나고 삼성전기에 복귀해 2년간 선수생활을 더 하고 2004년 일본에서 코치생활을 하던 박성우의 권유를 받아들여 일본에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2005년 김중수 당시 대표팀 감독의 부름에 화순군청 코치로 한국에 복귀한다.

“2003년을 끝으로 삼성전기를 떠나 일본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름 적응을 했는데 김중수 감독님께서 화순군청 코치를 해보라고 제안하셔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화순에서 정착해 1년 넘게 코치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안형편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코치를 그만두고 경기도로 올라와 동호인 레슨을 시작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당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동호인 코치였지만 그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 술과 담배를 아직도 하지 않는 그는 선수시절에도 모범생으로 불렸다. 그렇게 성실한 자세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갔다. 황선호 이전에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가 은퇴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호인 레슨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황선호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길을 선택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레슨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다. 실업팀 코치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건 사실이만 돈만 벌자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5년 넘게 한 지역에서 레슨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난 나에게 배우는 동호인들이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배드민턴
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번 인연을 맺으면 관계를 오래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3~4년 넘게 레슨을 받으신 분들도 꽤 있다.”

코치님 덕분이라는 말이 기분 좋다
생활체육에서 일한 시간이 꽤 지나다보니 하나, 둘 직책을 떠맡게 되었다. 현재 황선호는 경기도배드민턴연합회 경기이사, 안양시배드민턴연합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직책이나 직함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 단지 자신에게 레슨을 받는 동호인들의 실력이 좋아진다면 그것을 행복하다.

“지역에서 이런 저런 직책을 맡고 있는데, 그런 쪽에 욕심은 없다. 코치로서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회원들이 실력이 늘었다고 할 때,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나서 ‘코치님 덕분’이라고 얘기해줄 때 참 기분 좋다. 레슨을 하면서 동호인들과의 관계에서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다. 나는 최대한 회원들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려서 재밌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남들 퇴근할 때 일해야 한다는 점은 가끔 아쉽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생활 패턴이 반대니까.”

황선호는 동호인들에게 실력 향상을 위한 팁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본지에 연재될 ‘백핸드 마스터’에 대한 각오도 밝혔다.

“회원들에게 평소 가장 강조하는 점이 몸에 힘을 빼라는 것이다. 물론 생각처럼 쉽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기술을 구사한다면 얽혀있는 실타래가 풀리듯 실력 역시 크게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멀리보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도 중요하
다. 이런 것처럼 한 번에 많은 걸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포인트를 잡아서 하나라도 확실하게 배울 수 있도록 배드민턴코리아의 백핸드 마스터 코너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동안의 여러 가지 경험과 느낀 점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미래를 위한 준비
황선호는 올해부터 지도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경기지도자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친구인 김동문 교수와 함께 체육과학연구원에서 매주 수업을 듣고 있다. 생활체육지도자의 수명이 짧다보니 아무래도 미래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엘리트 팀의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처음 생활체육지도자가 되면서 실업팀 코치를 그만둔 것이 정말 잘한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물론 그때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배드민턴 팀의 지도자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다. 그래서 올해 경기지도자 1급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선수생활, 짧았지만 코치를 했던 시절 그리고 지금 동호인 레슨을 하는 모든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동호인 레슨을 하면서 배드민턴에 대해 세심하게 연구하고, 공부하고, 어떻게 지도해야하는지 알게 되더라.”

황선호 코치는 오늘도 생활체육 일선에서 활동하면서 그곳에서 배우고, 느끼고, 깨닫게 되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새로운 준비를 시작한 그를 또 어떤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박민성 기자

[배드민턴코리아 2012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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