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지금 이 순간을 성실하게 보내자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나경민 한국체대 교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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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20-11-20 12:57본문
지금 이 순간을 성실하게 보내자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나경민 한국체대 교수 #2
[본 인터뷰는 배드민턴코리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으로, 9월에 진행됐습니다]
나경민.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름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세계선수권 2회 우승, 아시안게임 4회 금메달, BWF 올해의 선수상 수상, BWF 명예의 전당 헌액, 올림픽 은메달 및 동메달, 국제대회 14개 대회 연속 우승 등 나경민은 선수 생활 내내 최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선수 은퇴 이후 나경민의 직함은 다양했다. 혼합복식 파트너였던 김동문과의 결혼 및 출산 후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나경민은 2011년 대교눈높이 배드민턴단(이하 대교)의 '감독'으로 일선에 복귀했다. 하지만 모기업의 경영 악화로 인해 대교가 해체된 후에는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활약했다. 그리고 2020년 나경민에게 새로운 직함이 생겼다. 모교인 한국체육대학교의 '교수'가 된 것이다.
한국체대 나경민 신임 교수를 만나봤다. 아직까지는 교수라는 직함이 어색하다 했지만, 다시 일선에서 선수들을 지도한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나교수의 표정과 인터뷰를 통해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박성진 기자 | Photo 김도훈(코이웍스)
배드민턴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지도하는 현장이 가장 즐거운 나 교수
자녀 중 딸(김한비)만 운동을 하는 것인가.
아니다. 큰애(아들 김한울)는 야구를 한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이다. 아주 잘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 투수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이라서 아직 성장하는 중인데, 키는 계속 클 것 같기는 하다. 잘 크고 있다. 잘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부모 마음이지 않나. 하하. 딸은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다. 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둘 모두 운동 선수가 되기를 바랬던 것인가.
큰애 야구 시킨 거는 김동문 교수가 대리만족 하려고 시킨 것 같다. 하하. 한비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배드민턴을 해야 한다고 주지시키긴 했다. 둘 모두 재미있게 운동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녀들이 엄마 아빠가 배드민턴에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제 조금 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되려 서서히 걱정되고 있다. 보통 엄마가 누구다, 아빠가 누구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 않나. 운동을 처음시킬 때 그런 부분 때문에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어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지금도 걱정스럽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지고 가야 할 운명 아닌 운명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다 씻어내고 운동을 잘 하길 바란다. 운동을 잘 하지 못하더라도 자유롭게 잘 성장하면 좋겠다.
예전에 대표팀 코치로 있을 때 애들 육아는 어떻게 했나?
친정 엄마가 고생을 많이 했다. 진천에서 나오고 난 이후에는 같이 살고 있다. (애들)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 집에 오는데 애들이랑 잘 지낸다.
2018년 10월 이후, 대표팀 코치직에서 사임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나.
오래간만에 집에서 쉬었다. 덕분에 애들하고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고, 한편으로는 교수직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됐었다.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학교로 들어올 수 있는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작년 여자복식 성적이 좋았다.
선수들이 잘 하고 있어서 기분 좋고 뿌듯하다. 앞으로도 더 잘했으면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올림픽을 맞춰 준비했었고, 중간에 끊겨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가르쳤던 선수들이 잘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기분 좋다. 대표팀 선수라면 목표가 뚜렷하고 참 열심히 하지 않나. 그런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나도 참 재미있었다.
조금 더 옛날 이야기를 해 보자. 한국 여자 배드민턴 선수로는 유일하게 올림픽 여자단식, 여자복식, 혼합복식에 모두 출전했다. 이 중 가장 좋아했던 종목은 무엇인가?
그때는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몰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단식이 가장 나았던 것 같다. 힘들긴 가장 힘들지만 단식이 제일 좋았다.
1996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여자단식, 혼합복식 두 종목에 출전했다. 단식과 복식을 병행해 훈련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혼합복식은 박주봉 감독님이랑 파트너를 할 때 였다. 그런데 메달을 따낼 확률이 혼합복식이 더 높으니까 혼합복식에 거의 올인해 훈련한 상황이었다.
여자단식에 출전할 랭킹이 됐던 것인가.
혼합복식에 집중하기 전에 국제대회 단식 성적이 괜찮았다. 그때에도 세계랭킹 상위 선수들의 국제대회 의무 출전 조항이 있었다. 단식에 출전하기만 해도 기본 랭킹 포인트가 주어지다 보니 랭킹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올림픽에도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수 생활을 통틀어서 긍정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 보자면?
세계선수권 우승했을 때랑, 2002년 아시안게임 여자복식 우승했을 때? 마지막 올림픽에서 3등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반면 부정적으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올림픽 때인 것 같다. 시드니, 아테네 둘 다. 그런데 또 해도 또 그렇게 됐을 것 같다. 올림픽은 실력이 전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세 번 올림픽 출전하며 느낀 것은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운이나 그날 컨디션이나, 이런 여러 가지가 올림픽에서는 또 있는 것 같더라.
여자복식도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었다. 그리고 올림픽 동메달도 땄었고. 나경민에게 여자복식 최고의 파트너였던 선수는?
아무래도 마지막에 같이 했던 (이)경원이가 제일 편했다. (정)재희도 그렇고 경원이도 그렇고 운동을 진짜 열심히 했다. 재희랑은 2년 파트너 했는데, 진짜 열심히 했었고, 경원이도 마찬가지다. 두 선수에게 무척 고맙다.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선수들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 성적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경원이도 처음에는 단식 선수로 대표팀에 선발됐다가 나중에 복식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나랑 파트너가 된 것인데, 그때 경원이가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올림픽 동메달은 못 땄을 것 같다.
혼합복식은 박주봉 감독 이후 계속 김동문 교수와만 파트너를 했다. 한번 정도 파트너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다른 선수는 있었나.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하하하. 지금도 딱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파트너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서 단기간에 만들어 내기 쉽지 않다. 지금은 조금 스타일이 달라지기 했지만 우리 선수 때에는 남자가 키를 잡고 있어서 경기를 리드하는 편이었다. 여자 선수들은 남자 파트너 에게 길들여 진다고 보면 된다. 다른 선수랑 하면 뭔가 잘 안 맞는 느낌이 바로 든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이랑 하면 재미있다 같은 생각은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전 김동문 교수 인터뷰를 보면 말수가 적은 편이라고 했었다. 둘이 경기할 때도 그랬나?
그렇다. 하하. 코트 안에서도 말 많이 안 했다. (집에서는?) 집에서도 그런 것 같다. 하하. 농담하고 장난치고 그런 성격이 둘 다 아니다. 서로 진지한 스타일이다.
그동안 지도했던 모든 선수들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를 꼽아 보자면.
특정 선수라기 보다는 그냥 대교 시절 선수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들어 오면서 대교 감독을 맡았었는데 본격적인 첫 지도자 생활이었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도 정열을 다 해서 쏟았던 기간이라 그 멤버들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최혜인 SNS를 보면 대교 출신 선수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 같던데.
애들이 전화도 자주 해주고 1년에 1~2번씩 같이 모인다. 예전에는 내가 다 사줬는데, 요즘에는 알아서 회비를 걷어 오더라. 하하.
만약 대교 배드민턴단이 해체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 것 같나.
잘 됐을 수도 있고, 못 됐을 수도 있고. 지금은 배드민턴 환경이나 조건이 많이 좋아졌지 않나. 대교는 기업팀 중에서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미약했던 편이었다. 최근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은 팀들의 환경과 조건을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까지 있었다면 좋은 선수들을 많이 지도했겠지만, 스카웃에 대한 어려움이 컸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또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 지도하기에는 조금 힘들었지 않았을까.
예전과 현재 선수들의 차이를 구분하자면. 목표는 똑같다. 목표는 같은데 가고자 하는 열정이 지금 선수들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안 그런 선수들도 있기는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그런가 한발 뒤에서 보고 있으면 선수들의 열정이 떨어져 보이긴 한다.
다시 태어나도 배드민턴 한다? 안 한다?
(단호하게) 한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배드민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 만약 교수도 단순한 이론 교수라면 재미 없었을 것 같다. 전문 실기 교수처럼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가장 좋고 행복하다.
이름 | 나경민
출생 | 1976년 11월 25일
출신학교 | 영등포초-미림중-미림전산정보고-한국체대
신체 | 175cm
소속 |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과
세계선수권 2회 우승(1999, 2003)
올림픽 혼합복식 은메달(1996)
올림픽 여자복식 동메달(2004)
아시안게임 금메달 4회(1994~2002)
수디르만컵 우승(2003)
BWF 올해의 선수상 수상(2003)
혼합복식 14개 대회 연속 우승(2002~2004)
BWF 명예의 전당(2009)
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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