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최고를 뜻하는 단어는 전부 그의 수식어로 적격이다, 김동문 교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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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24-06-10 13:57본문
▶ 허무하게 막을 내린 첫 번째 배드민턴부 생활
그는 배드민턴부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식으로 배드민턴부에 들어가기 1년 반 전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배드민턴부에 들어갈 기준을 넘지 못했다. 반에서 키가 크거나 달리기가 빠르면 1차 선발됐다. 그 후 2차 선발 과정을 거친다. 선발된 키 큰 아이들 중에서도 상체보다 하체가 월등히 긴 신체조건을 가졌거나, 낮은 철봉을 걸으며 평형감각을 테스트했고, 던지기 공을 던지며 손가락 끝의 감각을 시험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 테스트조차 받을 수 없었다. 지금 모습을 보고서는 믿기지 않겠지만 어릴 적부터 잘 먹지 못한 이유 때문인지 왜소하고 키도 작았다.
배드민턴을 하고 싶은 마음만 간직한 채 속절없는 시간이 흘렀다. 같은 반에서 배드민턴부로 뽑힌 키 큰 친구가 있었고 김동문 교수는 그 친구를 한 달 정도 쫓아다녔다. 당시 초등학교에 있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중학교에서 훈련이 진행됐다. 배드민턴부가 아니기 때문에 관중석에 앉아서 운동하는 것을 쳐다만 보다가 집에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배드민턴을 너무 하고 싶었으나 뽑히질 못했으니 하고 싶다는 말도 못 꺼내고 매일 구경만 한 것이었다. 키 큰 친구를 쫓아다닌지 한 달이 됐을 무렵, 배드민턴부 담당 선생님이 먼저 다가와서 운동이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셨고, 아무런 관문 없이 배드민턴부에 들어갔다. 그렇게 배드민턴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독 허약한 체질이였던 그는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짧은 배드민턴부 생활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 정말 못 먹고 자랐기 때문에 영양결핍으로 운동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그토록 들어가고 싶던 배드민턴부를 스스로 나오게 됐다.
▶ 사실 야구를 하고 싶었던 소년
4학년이 됐고 그 당시 하태권을 짝꿍으로 만났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들은 특별활동 시간에 육상을 선택했다. 배드민턴부는 특별활동 동아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육상을 지도했던 분이 배드민턴부 감독님이셨고, 그전에 배드민턴을 잠깐이라도 해봤으니 육상 대신 배드민턴부에 다시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에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하고 형들과 야구를 취미로 즐기던 도중 야구 코치로부터 야구부 제안을 받아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장비가 너무 비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배드민턴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배드민턴부를 들어가면 라켓 등 장비를 무료로 지원해주고 간식을 준다는 이야기에 혹해서 하태권과 배드민턴을 택했다. 이때의 결정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하태권은 이미 완성형의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3학년 때 배드민턴부로 선발됐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스스로 그만둔 이력이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우연히 배드민턴부를 들어가게 됐다. 어쩌면 우연이 아닌 필연일지도.
▶ 남들보다 뒤처진 시작
제대로 운동을 시작한 것은 4학년이었고, 시작했을 때 3학년 때부터 운동을 해왔던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또래지만 김동문 교수는 후보 생활을 시작했다. 이미 배드민턴부인 아이들은 4교시만 듣고 운동을 할 수 있었다. 1년 늦은 그는 매일 같이 정규 수업을 다 마친 후에 우유대리점에서 우유를 타고, 빵가게에서 빵을 받아서 간식을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우리의 체육관 도착은 간식 시간을 의미했다. 남들은 코트 위에서 연습할 때 벽에다가 셔틀콕을 치고, 구석에서 연습했다. 대회를 나가면 결과를 내야 하니, 1년이나 늦은 그에게는 어쩔 수 없이 기회가 없었다. 4학년 때는 지금 듣는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김동문과 하태권 중 누가 꼴등인지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후보 생활을 하며 1년이 지나갔다. 5학년 때, 배드민턴부 감독님께서 국가대표 코치로 가려고 하던 지도자를 초등학교 코치로 모셔 오게 됐다. 그가 권승택 감독이다. 삼성 감독이었고 국가대표 감독도 역임한 이력이 있다. 권 감독이 오고 난 후 팀 컨설팅을 제대로 진행했고, 김동문과 하태권을 복식 전문선수로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배드민턴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단식은 감히 노려볼 수 없었고, 주전선수가 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복식전문 선수가 됐다. 처음에는 당연히 A조 주전 복식조는 아니었고, B조 복식조였다. 복식과 관련된 훈련만 받은 덕분에 B조 복식을 꿰차긴 했다.
3편에서 이어집니다.
tags : #원광대학교 스포츠지원센터 센터장, #배드민턴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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