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당연한 승리도, 쉬운 우승도 없다 전무후무 시즌 전관왕,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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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드민턴코리아 댓글 0건 작성일 2022-12-21 14:29본문
[배드민턴코리아] 올해 각 단계별로 두드러지는 강자들이 존재했다. 가장 어린 초등부에서는 진말초가 여자초등부를 제패했다. 남자고등부에서는 김천생명과학고가 하반기를 휩쓸었지만 ‘1년 내내’라고 보기에는 전반기의 힘이 떨어졌다. 일반부에서는 남자팀은 밀양시청이 돋보였다면, 여자팀은 명실상부 삼성생명이 유아독존의 자리를 차지했다. 밀양시청이 삼성생명, 요넥스 등 유력한 우승후보들과 치열한 경쟁 끝에 최다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면, 삼성생명은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다. 대부분의 경기들을 3-0 완승으로 마무리하며 왕조의 문을 열었다.
1월에 1월에 열렸던 DB배드민턴코리아리그 초대 챔피언 등극을 시작으로, 7월 회장기전국종별대회, 8월 전국종별선수권을 연이어 제패하더니 지난 9월 전국체육대회 우승으로 화룡점점을 찍었다. 단체전을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 역사적인 성적표의 공신들은 많다. 단식의 안세영과 김가은, 복식의 김혜정과 이유림 등 가히 ‘보증수표’라고 할 만한 선수들이 잔뜩 포진한 스타군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스포츠든, 단순히 스타들을 모아놨다고 그 별들이 모두 은하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별들을 모아 비로소 은하수가 흐르게끔 하는, 감독의 역량이 없다면 시즌 전관왕은 ‘목표’이지 ‘결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1996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이자 스타 군단 삼성생명을 이끄는 스타 감독, 길영아 감독을 만났다.
경이로운 시즌 전관왕, 언터쳐블 삼성생명
기록을 뒤져봐도 이런 기록이 없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전무후무’하다. 시즌 전관왕을 해냈다. 역사적인 기록에 대한 소감을 말해 달라.
올해 성적이 역대 지도자 생활 중에 최고의 성적을 낸 것 같다. 관공서 팀들만 참가하는 대회 말고 메이저 대회에 모두 참가해 단체전을 다 우승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따보고, 아시안게임도 나가보면서 선수로서 많은 행복을 누려봤지만, 지도자로서 이런 기쁨은 또 다르다. 국내 대회에서 실업팀 전관왕이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조차도 하지 않았다.
말이야 늘 매 대회마다 ‘우승하겠습니다’하고 나서지만 포부랑 현실은 다르지 않나. 우승은, 특히 단체전 우승은 하늘이 준다. 이경원, 이효정 같은 화려한 스타들을 포함해 국가대표를 절반 이상 보유했을 시절에도 하지 못한 기록이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장 행복한, 기억에 남을 해가 될 것 같다.
오죽하면 구단에서도 ‘내년에 어떡하시려고 이렇게 (우승)하세요’ 할 정도다(웃음).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자마자 너무 좋은 성과를 1년 만에 내버렸다. 내년은 또 새로운 도전이 되겠지만, 지금은 일단 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즐겁게 ‘우승 턱’을 내고 있는데, 카드를 아무리 긁어도 늘 기쁘더라(웃음). 과분한 기쁨을 누렸으니 또 베풀어야지. 친구들도 좋은 기운 받아가겠다고 만날 때마다 손 한 번 잡아달라고 한다.
인터뷰 끝나고 악수 부탁한다(웃음). 지도자로서도 훌륭한 커리어지만, 선수 생활 워낙 ‘짱짱한’ 커리어를 보냈지 않나. 선수로서 우승할 때랑 지도자로 우승할 때랑 여운이 다른가.
내가 선수로 뛰면서 우승할 때보다 지도자로 우승할 때가 훨씬 보람차다. 올림픽에서 우승할 때만해도 국민들이 왜 이렇게 기뻐해주시는지 사실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지도자가 되고 나니까 그런 감정이나 이유들을 너무 잘 알겠더라. 부모는 자기가 10만큼 잘 해서 기쁜 것보다 자식이 5, 6만큼만 잘해도 더 기쁘지 않나. 선수 시절에는 내 몫만 한다고, 오직 나만 바라보며 내 것, 내 목표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지도자가 되며 자식 키우는 느낌으로 선수들을 하나하나 돌보며 그 선수들이 하나씩 목표를 이뤄가는 것을 보면 더없이 기쁘다. 선수들이 우승하는 것을 보면 ‘저 아이가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면서 저 자리까지 갔겠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그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으니까 일일이 선수들의 모든 과정을 다 보지 않아도,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 노고를 알 수 있다.
안세영, 김혜정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내 대회에 대부분 참가한 공도 큰 것 같다.
원래 올해 아시안게임이 열릴 예정이었지 않나(본디 2022년 9월 10일부터 9월 25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1년 연기됨-편집자 주). 그래서 국가대표 소속 아이들이 국내 대회 참가를 많이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대표팀 가기 전에 우승을 해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이 컸는데 아시안게임이 연기되며 선수들이 모든 대회에 다 참가할 수 있었다.
또 큰 부상을 당한 선수가 없었다. 이래서 운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은 삼성생명 스쿼드가 화려하다고 해도 단체전에선 한 명만 다치거나 삐끗해도 우승과 단숨에 멀어진다.
코리아리그 우승으로 시작, 전국체육대회 우승으로 완성한 전관왕
연초 있었던 DB배드민턴코리아리그(이하 코리아리그) 우승부터 첫 단추를 잘 꿴 것 같다. 초대 대회 우승이기도 하고, 다른 대회랑은 결이 달라서 각별했을 것 같은데.
맞다. 특히 삼성전기에서 삼성생명으로 둥지를 옮긴 후에, ‘삼성생명’ 이름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냈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닥치면서 지난 2년간 손쓸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누가 뭐라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내 스스로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코리아리그에 참가하게 됐다. 인천국제공항이나 MG새마을금고가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어우삼(어차피 우승은 삼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입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초에는 항상 변수가 많다. 작년 연말 국제대회 이후 (안)세영이가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상태였다. 세영이 몸 상태가 100%가 아니었고, 실업팀 입단 이후 치르는 첫 국내 대회였다. 결국 정말 결승전에는 세영이가 못 뛰지 않았나. 그래서 긴장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다. 결승에서 세영이가 빠지면서 ‘헉’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너무 잘해줘서 올해 스타트를 잘 끊을 수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원년 챔피언이 되니까 너무 좋더라. 살면서 ‘초대’, ‘첫’ 이런 쪽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올림픽에서도 혼합복식이 처음 올림픽 종목이 되었을 때 내가 첫 금메달을 땄지 않나(1996아틀란타올림픽). 실업팀에서 여자 감독도 내가 처음이다. 그리고 이번 코리아리그 초대 우승까지 했으니 각별할 수밖에.
선수들도 코리아리그 자체를 많이 즐기고, 우승을 많이 기뻐하던데.
코리아리그 같은 대회가 많아지면 참 좋겠다. TV 중계도 하고, 관중들도 많이 오셔서 관람하니까 대회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코트에만 조명을 쏘면서 국제대회처럼 하지 않았나. 상대적으로 약한 팀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 티가 나더라.
선수 시절, 전영오픈 생각이 많이 났다(길영아는 전영오픈 여자복식에서 정소영과 1993, 1994년, 장혜옥과 1995년 우승으로 3년 연속 우승함-편집자 주). 그 당시 그 대회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코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있으니까, 내가 정말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트에 입장할 때부터 모든 관중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고, 어두운 경기장에 조명이 딱 코트만 비추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멋진 무대를 만들어주니 정말 간절하게 우승하고 싶었다. 지금은 다른 국제대회에서도 그렇게 (연출을) 해주니까 보기 좋더라.
이번에 일본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과 재팬오픈을 보러 갔는데, 인도네시아처럼 일본에서도 엄청난 관중들이 몰렸다. 계속 매진일 정도로 관심이 엄청나더라. 그런 만원 관중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면 선수들은 더 열심히 뛸 수밖에 없다. 자기 플레이 하나에 환호가 쏟아지고, 승리하면 더 큰 관심과 TV에까지 얼굴이 나오니 말이다. 우리도 (김)나영이를 파이널 단식으로 빼뒀는데, 대회가 진행되고 앞선 차례 선수들이 그런 관심과 응원을 받으니까 자기도 앞 순서로 넣어달라고 하더라(웃음).
당연한 승리도, 쉬운 우승도 없다 전무후무 시즌 전관왕,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 ②에서 계속됩니다.
이혁희 기자
tags : #길영아, #삼성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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